2008년 가을, 펀드 잔고를 보고 창을 닫았습니다
2008년 가을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적립식 펀드에 넣고 있었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권해서 시작했고,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갔습니다. 그해 가을 잔고를 확인하고는 그냥 창을 닫았습니다.
한동안 안 봤습니다. 보면 속이 상하니까요.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부실하게 운영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파생상품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손실은 우리 몫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나온 문서가 있습니다
2008년 10월 31일,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아홉 쪽짜리 문서가 인터넷에 올라옵니다. 작성자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입니다. 지금까지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한 달 반쯤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첫 블록이 만들어집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재무장관, 은행에 대한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두다" — 그날 영국 신문 1면 제목입니다.
지울 수 없는 곳에 그 문장을 남겼습니다.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분명히 해둔 셈입니다.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백서가 지적한 건 기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다룰 때는 늘 누군가를 믿어야 합니다. 은행이 내 잔고를 제대로 기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중앙은행이 화폐 가치를 지켜준다고 믿습니다. 증권사가 내 주식을 잘 보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이 깨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2008년에 봤습니다.
백서의 제안은 이겁니다. 믿을 대상을 없애자. 특정 기관이 장부를 관리하는 대신, 참여자 모두가 같은 장부를 나눠 갖고 규칙으로 검증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워졌나 하면,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가 자주 생깁니다.
비트코인이 "국가 밖에서 마음대로 쓰는 돈"이라는 이해는 지금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그런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거래소는 실명 확인을 하고, 송금에는 근거가 필요하며, 2027년부터는 세금도 붙습니다. 미국에서는 자산운용사가 ETF로 담고 있습니다. 제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백서가 말한 게 사라진 걸까요.
아닙니다. 남은 게 있습니다.
남은 것은 규칙입니다
총 2,100만 개. 이 숫자는 바뀌지 않습니다.
누가 결정해서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위기가 와도, 정권이 바뀌어도, 경기가 나빠도 그렇습니다.
2008년에 우리가 겪은 게 정확히 그 반대였습니다. 위기가 오자 각국이 돈을 풀었습니다. 그 자체는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다만 그 결과로 화폐 가치가 희석됐고, 그 부담은 그 화폐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나눠 졌습니다.
비트코인이 지키는 건 사용의 자유가 아니라 발행량과 규칙의 조작 불가능성입니다. 이건 제도권에 들어와도 그대로 남습니다.
파괴가 아니라 진화입니다
비트코인이 나온 뒤 금융이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은행은 그대로 있고, 오히려 은행이 이 자산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각국 정부는 규칙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존 금융을 부수는 대신, 기존 금융이 이걸 흡수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파괴가 아니라 진화에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2008년, 우리는 아무 잘못 없이 손실을 봤습니다. 믿고 맡긴 구조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 백서는 그 시기에 나왔고, 첫 블록에 은행 구제금융 기사 제목을 새겨 넣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답이었는지 분명합니다.
지금은 제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자유'는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총량 2,100만 개라는 규칙은 그대로입니다.
중요한 건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이 구조가 무엇을 지키려고 만들어졌는지 아는 것입니다.
제도권 편입 뒤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비트코인 탈중앙화, 제도권 편입 후 무엇이 달라졌나 에서 이어집니다.
지금 구조가 내 자산에 어떤 뜻인지
자금의 성격과 목적, 보유 기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궁금하시면 문의를 남겨주세요. 요청하신 분께 개별적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시장·제도 정보이며 특정 상품의 권유나 청약 안내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본인에게 귀속됩니다.